지구를떠도는유령영화제/4th EGOFF

상영작 <온실인간> 감상평 ㅣ 기억의 광합성에 대하여

egoff 2024. 10. 14. 14:00

<온실인간> 스틸컷

 

  두 인간이 있다. 그리고 좁은 방이 있다. 골방과도 같은 음침한 방에는 자그마한 햇빛만이 내리 쬐고 있다. 두 인간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하다. 인간이라기에는 말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어눌하고, 마치 광합성을 하는 것처럼 침대에 잠자코 누워있다. 대체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영화는 설명해 주지 않는다. 다만 희미한 기억들이 차츰 틈입하기 시작한다. 이 기억은 희망적이지도 그렇다고 선명하지도 않은 혼탁한 기억들이다. , , 상처와 같은 폭력의 이미지부터 하천과 소녀의 영롱한 이미지까지, 종잡을 수 없는 기억의 파편들이 드문드문 영화 속에서 출현한다.

 

  기억의 잔해 속에서 두 인물은 좁은 골방을 흐릿하게 헤맨다. 기억은 그들의 족쇄이다. 마치 어떤 메아리처럼 영원히영원히영원히... 되풀이하는 그들의 회상은, 두 남녀를 나아가지도, 또 도망가지도 못하게 골방 속에 붙들어 놓는다. 그들의 육체는 어쩌면 썩어들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서로의 육체는 점점 달라붙고, 그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진다. 마치 온실 속의 화초들처럼 그들은 변신한다.

 

  <온실인간>은 범용한 극영화와는 다르다. 미디어 아트가 연상되기도 하고, 어쩌면 식물 다큐멘터리라 부르고 싶은 외피의 흐물거림이 영화에 현존한다. 몽롱한 숨소리, 거친 금속의 이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숨을 내쉬는 육체의 완만한 박동까지, 영화의 흐물거리는 외피들이 기묘한 감흥을 주는 영화다.

 

―김재범